Chapter 01 / 05 1921 — 1984

Life

생애
Seoul · Nottingham · Sinchon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의 장남으로 태어나, 전기가 늘 모자라던 나라에서 전기공학의 기초를 처음부터 쌓은 사람. 한만춘의 예순세 해를 여덟 개의 시기로 나누어 기록한다.

안경을 쓰고 넥타이를 맨 한만춘 교수의 초상
PL. 01 춘강 한만춘Portrait n.d. 출처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春崗 — 호

호는 춘강(春崗). 봄 춘(春)에 언덕 강(崗)을 쓴다.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4년 여름 세상을 떠났다. 그사이 그는 발전소의 기획과장이었고, 스물일곱 살의 대학 교수였으며, 영국에서 원자로 제어를 연구한 이 땅의 첫 전기공학 박사였다.

우리말 전기공학 교과서를 쓰고, 버려진 부품으로 컴퓨터를 만들고, 한 나라의 전압을 바꿀 근거를 계산한 공학자. 이 페이지는 그 길을 연대순으로 따라간다.

연보

1898
I.1898 — 1941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 한기악은 1919년 도쿄 2·8 독립선언에 참여하고,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뒤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귀국한 뒤에는 펜을 들었다.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시대일보 초대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한기악 韓基岳1898 — 1941 · 독립운동가, 언론인
1921
II.1921 — 1943

서울에서

1921년 6월 26일 서울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희정. 아래로 만년, 만증, 만청 세 동생을 두었다. 한만년은 훗날 출판사 일조각을 세웠고, 한만청은 서울대학교병원장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던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전기공학과에 진학했다. 1941년, 아버지를 여의었다.

1943
III.1943 — 1955

첫 기수

1943년 경성제국대학 전기공학과를 1회로 졸업하고 곧바로 조선전업주식회사에 들어가 기획과장과 발전과장으로 일했다.

광복 뒤인 1947년 대한전기학회 창립 회원이 되었고, 이듬해 스물일곱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후 전북대학교와 인하공과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7대한전기학회 창립 회원
1955
IV.1955 — 1961

신촌, 그리고 노팅엄

1955년 연세대학교 이공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195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관련 국비 유학생으로 영국 노팅엄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1961년, 원자로 제어 분야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전기공학 박사 1호였다. 전기제어공학 이론을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에 응용한 연구였다.

Ph.D., University of Nottingham1961 · 원자로 제어
1960
V.1960 — 1981

우리말 교과서

그가 번역과 저술에 나서기 전까지 대학의 전기공학 강의는 일본과 미국 교재에 기대야 했다. 1960년 『교류회로』 번역 출판을 시작으로 『배전공학』(1963), 『발전공학』(1964), 『송전공학』, 『자동제어이론』, 『전기통론연습』(1973)을 차례로 펴냈다.

1981년에는 『전산학개론』과 『자동제어 시스템』을 내놓았다. 학문의 바탕을 우리말로 다지는 일이었다.

1961
VI.1961

기계를 만들다

박사 학위를 받은 1961년, 그는 제자들과 함께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를 완성했다. 청계천 고물상에서 모은 군용 폐부품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였다.

진공관 전자장치로 고등 미적분 계산을 실시간으로 해냈고, 이후 전력 계통의 안정도 개선과 제어기 개발,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 연구에 쓰였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제557호연세 101 보기 →
1973
VII.1970 — 1981

전압을 올리다

제어공학의 개념을 전력 계통에 들여온 그는 1970년대 초, 배전 전압을 220/380볼트로 올리는 승압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1973년 시작된 승압 사업은 32년 뒤인 2005년에 마무리되었다.

같은 시기 대한전기학회 회장(1973–1976)과 IEC 한국위원장을 맡았다. 동탑산업훈장(1972), 서울특별시 문화상(1977), 국민훈장 동백장(1981)을 받았다.

1984
VIII.1984

8월 5일

연세대학교에서 초대 공학부장과 이공대학장, 산업대학원장, 산업기술연구소장을 지내며 산학협력의 기틀을 닦던 그는 1984년 8월 5일, 예순셋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두 해 뒤, 제자들은 그의 호를 딴 춘강학술상을 만들었다.

Offices Held — 직함

그가 맡았던
자리들

학교와 학회, 정부와 산업계를 오간 수많은 직함은 그가 과학기술의 기반을 넓히는 데 얼마나 오래 힘을 쏟았는지 보여 준다.

  1. 01연세대학교 초대 공학부장
  2. 02연세대학교 이공대학장
  3. 03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장
  4. 04연세대학교 산업기술연구소장
  5. 05대한전기학회 회장
  6. 06IEC 한국위원장
  7. 07국무총리실 평가교수
  8. 08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기술위원장
  9. 09한국기술검정공단 이사
  10. 10전국경제인연합회 기술조사센터 자문위원
  11. 11동력자원부 정책자문위원
  12. 12공업진흥청 표준심의회 전기부회 위원장
  13. 13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Lineage — 세 개의 이름

1898 —
Father · 아버지 한기악韓基岳 1898 — 1941

독립운동가, 언론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임시의정원 의원, 조선일보 편집국장, 신간회 발기인.

Han Man Choon 한만춘韓萬春 1921 — 1984

전기공학자. 대한민국 전기공학 박사 1호. 연세 101을 만들고 220V 승압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Eldest son · 장남 한민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기공학자.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을 지냈다.